두통이야기 당선작 모음
2023-01-04

2등 당선작 "적극적인 두통 치료를 통해 두통을 개선한 경험" 40대

 

저는 30년 동안 편두통을 앓고 있는 환자입니다. 20살에 시작된 편두통은 빈도가 점점 증가하고 응급실에 실려갈 정도로 그 정도가 점차 심해졌습니다.

편두통이 시작되면 기분이 나빠지고 모든게 귀찮아지며 소리에 민감해집니다. 그리고 전조증상이 있을 때 약을 먹지 않으면 점점 심해져 약을 복용해도 두통이 멈추지 않고 구토와 저림 증상까지 나타났습니다.

편두통이 오면 약국에서 약을 사서 20년정도 복용하다보니 내성이 생겨 잘 낫지 않고 역류성 식도염과 위염, 그리고 장상피화생 소견이라는 진단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편두통 치료가 너무 하고 싶었지만 아플 때 약을 먹는 것 말고는 할수 있는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프면 약을 먹고 그 약 때문에 속이 안좋아 매일 고생을 하며 일상이 자유롭지 않고 항상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이렇게 살던 중 우연히 명의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고 편두통 전문의 신경과 김병건교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치료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지방에 살고 있지만 먼 서울까지 갔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제 증상들을 듣고 정확히 편두통이라고 진단해주셨고 편두통 치료약을 먹을 것을 처방해 주셨습니다. 그 약은 위에 큰 자극도 주지 않고 전조증상이 왔을 때 바로 먹으면 거의 나았습니다. 두통 빈도가 줄지는 않았지만, 예방약을 복용하면서 두통의 강도는 엄청나게 낮아져서 예전과는 다르게 편두통이 와도 스트레스 받지 않고 살 수 있었습니다.

또 예방약 복용후로는 심한 저림증상과 구토, 그리고 응급실에 실려 가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예방약을 복용하면서 매일 편두통 일지를 써 증상과 통증정도, 먹은 약 등을 기재하면서 제 상황들을 치료 자료로 사용하였습니다. 또한, 직접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 편두통 관련 임상시험에 참여했습니다. 장기간의 효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빈도가 줄어들고 두통이 왔을 때 진통제의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는 효과를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복부에 주사하는 치료제를 처방받아 주사를 맞았습니다.

이 치료는 편두통 환자인 제 아들이 먼저 받았는데 큰 효과를 보아 저도 현재 진행중인 치료입니다.

지방에서 세달에 한번 대학병원 방문해 치료를 진행중이고 앞으로도 좋은 약이나 편두통이 완화되는데 큰 효과를 얻었지만 실생활에서도 전과는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매일 누워있고 먹고싶은 음식만 먹었다면 현재는 매일 조금씩이라도 운동을 하고 식습관을 바꾸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제 노력과 편두통을 연구해 주시는 교수님들 덕분에 증상이나 빈도가 눈에 띄게 줄었고 일상생활하는데 큰 지장을 주지 않아 전과는 다른 삶을 사는 것 같습니다.

또한 복부주사치료제는 이제 건강보험까지 적용되어 환자들이 부담갖지 않고 치료 받을 수 있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편두통은 겪어보지 않고 서는 절대 힘든 줄 모르는 질병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항상 누워 있을 수 밖에 없었던 제가 적극적인 편두통 치료를 통해 지금은 너무나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많은 의료진과 연구중이신 분들에게 이러한 고통에서 해방되어 어두운 방안에서 밖으로 나오게 해주신걸 너무나 감사하다고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지금처럼 편두통 완치를 위해 적극적인 치료를 할 것 이고 많은 환자들도 치료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등 당선작 “나는 두통을 반평생 정도 앓았다” 30대

 

채혈 후 진료를 대기하다 눈에 띈 포스터를 보고 이 글을 쓴다. 내가 지금 딱 서른이 된 여성이고 대략 2차 성징 때부터 앓았다고 치면 나는 두통을 반평생 정도 않았다고 보면 되겠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오른쪽 눈썹 쪽이 꿈틀꿈틀 아프다.

나는 어릴때부터 예민한 아이였다. 자고 일어나면 방긋방긋 웃던 동생과 달리 깨고나면 항상 인상을 찌푸리며 우는 아가였다고 한다. 그리고 기억이 있으면서부터는 자기 직전까지 머릿속에 오만가지의 생각이 뱅글뱅글 돌고 꿈을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꾸며 작은 소리, 작은 움직임에도 흠칫하며 깨는 잠귀가 밝은 편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중학생에서 고등학생 때쯤 찾아온 사춘기와 함께 두통이 본격적으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에서 항상 두통에 엎드려 있는 일이 다반사였고 담임선생님이 달려와 안위를 살피다 모든 학생이 반강제로 하던 야간 자율 학습시간에서 나는 제외되었었다. 그 즈음에 두통을 울렁거림을 동반하였는데 난 ‘위장이 약해서 항상 체던 엄마’를 닮아 체한 거라고 생각해 학교에서는 급식도 신청을 하지 않고 가능한 먹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었다. 바짝 마른 아이가 정규수업만 겨우 마치고 집에 가니 담임선생님은 유급을 권할 정도였다. 억울했다. 성적도 나쁘지 않아 담임선생님도 믿고 집에 보내주는 학생이었고 정규수업을 모두 들었고 야간 자율학습은 말 그대로 자율이니 출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닌데 두통 떄문에 유급을 권유받아야 한다니 꾸역꾸역 집에서 아픈 머리를 붙잡고 침대에 누워서 공부를 해서 성적을 유지했다. 유급만은 피하고 싶었다.

그 당시 대입스트레스로 인한 두통이었을 것으로도 막연하게 생각한다. 스트레스는 받으면 두통이 오는데 나는 예민한 만큼 스트레스의 역치가 낮았다. 아픈 만큼 병원에 가서 머리에 MRI를 찍고 하였으나 큰 이상은 없었고 의사선생님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스트레스를 받지말라는 처방을 받았다. 의사에게 대학교 가면 나을 병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들었었다. 나는 차라리 MRI에 이상이 있길 바랬다. 이상이 있으면 그 것을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했지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참다가 대학생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보다는 두통의 빈도는 줄었지만 계속해서 날 괴롭혔다. 참 희한한 고통이다. 어떻게 아프냐고 물어보면 표현하기는 쉽지 않은데 고통스럽다. 그렇다고 겉으로 드러나지도 않는다. 누군가 꾀병을 부리려면 부릴수도 있을만한 병이다. 나만 이렇게 아픈 걸까 하면서도 티비 속 드라마에서 항상 사람들이 아이고, 머리야란 말을 자주 쓰길래 나는 모두 이 정도의 두통을 달고 사는 줄 알았다.

두통 치통 생리통엔.... 광고에 많이 나오길래 두통은 발에 채이는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처음엔 일부 진통제로 듣던 두통이 듣지 않고 한알이던 약이 두 알 세알로 늘면서 결국 두통전문 병원을 스물 일곱에서야 찾아가게 된다. 다시 오랜만에 찍게 된 MRI에서도 내 머릿속은 정상이었다. 한번 더 실망했다. 마치 아픈거는 확실하냐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증상을 설명해달라는 말도 진료 순간에 아프지 않으면 설명이 잘 안되었다. 두통예방약과 아플 때 먹는 약을 처방받았다. 이 병원에서는 두통의 빈도가 줄지 않으면 두통예방약을 늘렸고 아플 때 먹는 약이 듣지 않으면 약의 용량을 늘렸다. 점점 줄여도 부족할텐데 이렇게 계속해서 늘려도 될까 싶은지 1년이 다 되었을 때 나는 그 병원 다니기를 그만뒀다. 차도가 안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병원에서 고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운동을 시작했다. 뭐든 지푸라기는 다 잡았었다. 내 신체의 특징은 마른 몸에 가슴이 유난히 글래머스해 항상 어깨와 목이 하중을 받았는데 두통이 오기 전이나 올 때쯤 뒷목이 당겨 혹시 이게 두통의 원인일까 싶어 요가를 했다. 큰 효과는 보지 못했다. 헬스장을 다니며 근육도 길렀으나 효과는 미미했고 헬스장에서 추천받아 통증외과에 가서 목에 침도 맞아봤다. 친한 간호사 언니가 난시가 있으면 두통이 있을 수 있다는 말에 시력교정술도 받았으나 두통과는 관련이 없었고 그 밖에도 베개를 바꿔보고 유명하다는 마사지를 받으러 가고 어깨에 힘을 빼면 경직성 두통일 경우 효과가 있다 해서 승모근 보톡스ᄁᆞ지 맞아보았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갔고 나는 여전히 두통과 함께였다. 그리고 작년 한창 큰 스트레스와 함께 하루에 진통제를 여섯알씩 먹어가며 보낼 때 아빠의 걱정으로 예약 순서까지 무시해가며 대학병원 신경과로 가게 된다. 비쩍 말라 다시 간 대학교병원에서 전 병원에서 찍었던 MRI를 보여줬고 역시 MRI상의 문제는 없었다. 예상했던 결과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두통 환자들 대부분이 MRI상의 문제는 없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편두통이라는 처방을 받았고 의사선생님은 진통제를 끊는 연습부터 시작할 거라고 하셨다. 미디어에서는 항상 두통이 시작되자마자 참지 말고 진통제를 먹으라 했는데 그래서 난 그걸 지킨 것 뿐인데 왜 약을 끊어야 하는건지 불안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약물중독이라 했다. 10대 때부터 아팠다고 하자 왜 이렇게 늦게 내원했냐고 꾸짖으셨고 항상 그 때마다 속이 안좋아서 체했을 때 머리가 아팠다고 하자 머리가 아파서 속이 울렁거린 거라고 정정해주셨다. 우울해서 두통이 오는 건지 두통이 와서 우울한건지 헷갈린다 하자 그건 의사선생님께서 가려준다 하셨다. 10년 넘게 앓으면서 나름 생겼다 생각했던 노하우들이 모두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진통제를 단번에 끊을 용기가 없던 나는 2주 정도 입원치료를 받았다. 10년 앓은 것에 비하면 2주 갇힌 것만으로도 감복할 수준이었다. 2주동안 아픈 순간순간마다 처방되어지는 약을 먹으며 조금 살 것 같았다. 진통제가 아니라고 했지만 나에게 꽤나 잘 듣는 약이었다. 그렇게 삼시세끼 꼬박꼬박 챙겨먹기 일주일에 두 세 번은 운동하기 잠을 12시 이전에 잠들기 통원치료 잘하기라는 약속을 받고 퇴원할 수 있었다. 그러나 평화롭던 병원 생활에서 다시 전쟁같은 일상생활로 돌아오니 생각보다 두통은 계속해서 날 쫒아다녔다. 안전하고 모두가 내 두통에 집중해주던 병원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을 지경이었다. 퇴원 후 내원에 엠겔러티의 처방을 받고 처음 두 달간은 나쁘지 않은 효과가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달을 거듭할수록 뚜렷한 효과는 찾을 수 없었고 배에 주사를 맞고 큰 아픔에 눈물을 슥슥 닦고 나올 때마다 이렇게 살아야하나 오히려 회한이 들었다. 여섯 달 정도 맞고는 담당 교수님한테 효과가 없는 것 같아 중단하고 싶다 말한 후 전에 예방치료로 먹던 약을 바꿨다. 스트레스와 기분에 따라 편두통이 오는 나에 맞춰 우울감에 효과가 있는 신경과에서 쓰는 약을 먹은지 네 달정도 되었다. 처음에 입마름이란 부작용이 있었지만 두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였고 그 미미한 부작용 말고는 약이 나와 잘 맞았는지 가끔은, 길게는 1주일 정도는 내가 편두통 환자라는 것도 잊고 살 정도는 되었다. 점진적으로 내원 주기도 길어지고 있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 직장인으로 살면서 스트레스 없이 사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나는 지금 이 정도에도 크게 만족하고 있다. 물론 조금 더 빨리 갔다면 내 성격과 예민함이 이렇게 극으로 치닫기 전에 원만하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후회도 남기는 한다. 많은 것을 포기한 것도 있지만 그래도 여유로운 부모님 덕에 두통에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해봤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지금 어느 정도 약으로 조절을 할수 있게 된 것만으로 큰 변화이다. 

아침에 오늘도 머리가 아프면 어떡하지에서 밤에 오늘도 머리가 아프지 않고 지나갔네로 변한 것이다.

오래 앓게 된 이유로 두통에 이골이 나서 주변인들에게 두통에 대한 고민이나 질문을 받으면서 나는 하루 빨리 병원에 가길 권유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도, 주변인도 모르게 오래 방치한 내 모습을 생각하며 말이다.

끝으로 두통뿐만 아니라 내 정신건강까지 살펴봐주시는 배대웅 교수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마친다.

 

3등 당선작 "빠를수록 좋은 편두통 진단" 20대

 

나에게 ‘편두통’이란 그저 내가 남들보다 예민해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편두통으로 인해 꽤 많은 불편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에 가서 본격적으로 치료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쩌면 미련할 정도로 참고 있었으며, 너무 심할 때 약국에서 진통제를 사서 먹고 해결하는 편이었다. 특히나 신경 쓰는 일이 앞당겨 있을 때 편두통이 더욱 잦았는데 어떤 때는 몇 알을 먹어도 괜찮아지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그런 내가 두통으로 병원에 내원하시는 할머니를 따라다니면서 할머니 담당 교수님의 권유에 따라 엠겔러티를 맞고 본격적인 두통 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다.

 

우선, 내가 두통으로 인하여 받았던 고통과 불편을 겪은 경험에 대해 나누고자 한다. 사실 두통은 사람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람에 따라 강도와 빈도는 상이하다. 강도와 빈도에 따라 치료 여부가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던 것과 같이 나에게 편두통은 잊을 법하면 찾아와서 고통을 상기시켜주곤 했다. 신경 쓰고 있는 일이 있고 중요한 일을 앞뒀을 때 두통의 주기가 짧아졌고 강도도 강했다. ‘신경 쓰고 있는 일’, ‘중요한 일’ 에 있어서 편두통의 고통이 심했다는 말은 곧 내 일의 효율이 떨어진다는 말과 같다. 그 중에 하나가 대학 입시를 치룰 때이다. 편두통의 강도가 심할 땐, 체한 것처럼 속이 메스꺼우며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고 어지럽고 머리가 깨질 거 같이 아프고 눈 앞이 아득하다. 이런 상태로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에는 그저 내 정신력으로 버텨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고통을 견뎌내고 약국에서 산 약을 먹으며 버텼지만 솔직히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항상 이렇게 센 강도로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뒷목이 뻐근하더니 곧 머리가 살살 아파오기도 하고 약을 먹기는 애매한 정도의 참을 수 있을 정도의 두통이 나타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태가 유지되면 당연히 생활의 질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다음으로, 두통의 조기 진단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두통을 치료한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은 내가 두통의 조기 진단의 중요성을 논한다는 것이 역설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나와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중요성을 어필하려고 한다. 나는 비교적 편두통으로 고생한지 몇 년 지나지 않아서 대부분 진통제를 먹으면 두통이 완화되었고 이내 편두통이 수반했던 여러 고통들도 완화되었다. 종종 약을 여러 번 나눠서 먹은 후 그제서야 괜찮아질 때도 있었지만 말이다. 물론 남들보다 냄새에 예민하고 민감한 편이긴 하지만 여느 다른 편두통 환자처럼 빛이나 소리가 싫거나 이에 예민하고 민감하게 반응하진 않는다. 이에 반해 우리 할머니의 경우는 오랜 시간, 몇 십년 동안 두통으로 고생한 뒤 본격적으로 치료를 시작했기 때문에 엠겔러티도 보톡스도 진통제로도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계신다. 주기적으로 보톡스를 맞으시고 거의 매일 진통제를 복용하시지만 매일매일을 두통과 함께 생활하신다. 내가 본 할머니는 타인에 비해 ‘소리’에 민감하시고 또 불안해하시는 면이 있다. 그래서 지하철 타는 것을 힘들어하신다. 그리고 또 어떤 일정을 앞두고 계실 땐 앞서 걱정하시기도 하고 불안해하시기도 하는 편이다. 이처럼, 조기 진단이 빠르면 빠를수록 효과가 빠르고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신체에 상처가 나서 아픈 것과 다르게 편두통은 삶의 질과 직결되기 때문에 빠른 판단으로 두통을 진단해서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나는 엠겔러티를 맞은 후 기대에 가득 차 있는 상태이다. 일반 사람들보다 두통의 횟수가 잦았기 때문에 치료를 받는 것이긴 하지만, 진통제를 먹으면 빠르게 효과가 있었던 편이기 때문에 엠겔러티의 효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함께 치료에 임하는 중이다. 두통에 시달리고 있는 모든 분들께 빠르게 병원에 가서 두통을 진단받고 치료받을 것을 권하고 싶다. 과거의 나처럼 그저 성격 탓으로 치부하며 진통제로 버티고 계신 분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가족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또 내가 직접 경험해본 결과 두통은 결코 자연스럽게 치료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루하루 버틸수록 더욱 강해져 돌아오는 것이 두통이라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두통으로 고통받는 분들이 치료 받고 두통 없는 삶의 질 높은 생활을 하기 바란다.

 

3등 당선작 "헛꽃" 60대

 

오랜만에 다시 찾은 수목원, 젖은 흙냄새 가득한 풍경이 몽환적이다. 미처 걷히지 않은 안개비가 숲속 아침의 정취를 더해준다. 그새 나무가 몰라보게 훌쩍 자란 모습에 처음 와 본 것처럼 낯설다는 느낌마저 든다.

 

빼곡히 들어찬 숲속, 유독 키 작은 초화류에 마음이 간다. 드문드문 자리 잡은 비비추와 맥문동 사이로 섬쑥부쟁이 모습이 수수하다. 아프리카 봉숭아 옆으로 물웅덩이에 피어난 수련이 말쑥한 얼굴을 내밀고 있다. 빅토리아 연이 다 자라면 사람을 태운다니…. 

은방울꽃과 산마늘이 무척 닮았다. 이들 사이에 붉은 꽃 한 송이가 시선을 가로챈다. ‘부겐빌레아’다. 이토록 붉고 아름다운 모습이 헛꽃이라니. 헛꽃, 진짜 꽃을 에워싸고 있기에 ‘포’라고 한다. 눈에 보일락말락 아주 작고 볼품없는 참꽃을 대신하여 화려한 몸짓으로 벌 나비를 불러들이기에 ‘헛꽃’이라 부른다는 해설사의 표정이 자못 안타까워 보인다. ‘정열’이라는 꽃말까지도 허무하게 들려온다. 

 

문득,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던 지난날들이 행여 헛것은 아니었는지 더럭 겁이 난다. 죽을 만큼 고통스럽던 두통이 헛된 것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견딜 수 없는 두통이 보름째 지속되던 날, 신경과 의사와 마주 앉았다.

“언제부터 아팠죠?”

“십 년은 족히 넘은 것 같아요. 통증보다 더 무서운 건 큰 병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에요.” 

“어떨 때 주로 아픈가요?”

“느닷없이 통증이 시작되어요. 왼쪽 관자놀이 부근이 아프기 시작하면 속이 메스껍고 얼굴은 물론 팔과 몸통까지 마비되는 느낌이에요.”

 

그동안 두통의 원인을 찾아내려고 무진 애를 썼다. 내과, 이비인후과와 치과, 그리고 안과 등, 가는 곳마다 별 이상이 없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햇빛에 나갔다 오면 때때로 머리가 아팠고 냄새나 소음이 심한 밀폐된 공간에 가는 것이 몹시 부담스러웠다. 그 이유를 이번에야 짐작할 수 있었다. 오감이 열린 아주 예민한 체질을 타고났다는 것이다. 생활 중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몇 가지 검사와 긴 상담 끝에 편두통 진단을 받고 약물치료를 시작했다. 아침저녁 외에도 통증이 시작될 때 곧바로 먹는 약과 여분의 진통제까지 처방받았다. 점차 통증의 강도가 낮아지고 빈도 또한 뜸해졌다. 거기다가 아프기 시작할 때 먹는 한 알의 약효는 마치 신세계에 들어선 느낌을 주었다. 약물치료 외에도 규칙적인 식사와 운동을 하고 수면의 질을 높이려고 애썼다. 명상과 스트레칭으로 심리적 여유를 찾으려고도 노력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간사한 것인지. 통증이 줄어들자 다시 이것저것 몰두하다 생활의 균형을 잃어버릴 때가 많았다. 때론 일흔이란 나이 앞에 공연히 초조할 때도 있었다. 일흔 전에 그림 전시를 하겠다며 준비작업으로 밤을 새웠다. 이것저것 끝없는 열망이 또다시 파고들었다. 

산다는 게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이란 없지 않은가. 생각지도 않았던 극도의 스트레스에 직면하게 되었다. 내가 선택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나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되돌아보면 지나친 유희로부터 나를 지키려는 시련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무를 잘 키우려면 물과 거름을 주는 외에도 웃자란 가지를 잘라주어야 하듯 주변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자극에도 적절하게 잘 대처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외부의 스트레스를 걸러낼 슬기로움도 버텨낼 강인함도 없이 허우적거리기만 했다.

 

또다시 극심한 두통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지독한 이명과 함께 시작되었다. 전문의는 자서전을 써보라고 권했다. 본인의 회복 의지만 있다면 글쓰기로 역동적인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글을 쓰던 중 한껏 떠벌리고 발가벗겨놓은 내 상처를 보면서 깨달았다. 너무 많은 생각, 너무 강한 의지 그리고 너무 높은 이상으로 내 능력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며 살았다는 것을. 무의식 속에 꾹꾹 밀어 넣어두었던 기억을 꺼내놓고 마음껏 아파하고 나서 다음 차례는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과거를 뒤돌아보았으니 현재를 딛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수필을 써보라고 했다. 글을 쓰다 보면 발목을 잡는 과거에의 집착, 원망, 후회 모두를 과감히 벗어버려야 함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안에 있던 또 다른 나도 울음을 멈추고 모두에게 화해하길 원하기 시작했다. 정신적인 에너지를 뺏기는 가장 큰 원인은 근심, 걱정 그리고 불안과 같은 부정적인 생각이다. 이제 과거에서 빠져나와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갈 일이다. 멀고도 먼 길을 돌아 이제야 나아가야 할 길을 찾았다. 나 자신을 알고 이해하는 일에 집중하는 가운데 좀 더 느긋해져야 한다는 것을.

 

숲이야말로 육체적, 정신적 균형을 맞추는데 아주 좋은 환경이라 여긴다. 바로 여기, 현재에 오롯이 몰두하며 마음을 챙기노라면 또 다른 편안함을 경험할 수 있다. 고요한 상태에 머무는 동안 심신의 긴장이 풀리면서 기분이 편안해지고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그런 순간마다 느낌을 글로 표현하고 있다. 창작의 기쁨을 통해 식물이 자라나듯 나를 성장케 함을 경험하게 된다. 식물은 경쟁하거나 서로 다투지 않는다. 헛꽃이거나 참꽃이거나 서로 탐하지 않고 시기하지도 않는다. 늘 제자리에서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기에 아름답다. 

 

지나간 날들이 행여 헛꽃이 아니었나 싶어 뒤돌아본다. 나를 키워내느라 바람에 찢어지기도 하고 햇빛에 타들어 가기도 했던 날이 떠오른다. 그 헛꽃 속에 아름다움으로 거듭날 수많은 참꽃이 숨어있었음을 깨닫는다. 끝. 

 

3등 당선작 "두통, 현명하게 극복하기" 40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포털사이트에 두통 두 글자를 검색하면, 이러한 문장이 보입니다.

“두통은 사실상 모든 사람들이 일생 동안 한두 번 이상은 경험하는 증상이다”

 

 올해 40세, 워킹맘인 저는 그렇게 남들 다 겪는 줄 만 알았던 두통을 10년 넘게 겪으며 살고 있습니다. 처음 머리가 아프다 라고 느낀건 20대 중반이었습니다.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신입사원이었던 제가 사무실에서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왼쪽 머리가 살짝 눌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참 철이 없어도 없었던 저는 광고에서나 보던 ‘바쁜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겪으며 나도 사회인이 되어가는 구나!’ 라고 생각했고 두통약을 파우치 안에 넣고 다니는 쇼핑리스트 쯤으로 여겨왔습니다. TV광고를 보고, 속이 편하다는 이유로, 아니면 주변 지인이 이 브랜드의 약이 좋더라 하면 잘 안 맞는 화장품을 바꾸듯 대수롭지 않게 약을 바꿔서 복용했습니다.  

 두통과 “가끔 불편하지만 극복 할 만한 동거”를 하던 그 사이 저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남들처럼 바쁘게 일하며 육아하며 살아왔습니다. 몇 년 새 두통의 강도는 점점 심해졌습니다. 처음에는 머리만 아프다가, 그 뒤로는 눈 알이 아프고, 그 뒤로는 울렁거림과 구역감이 났습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일시적인 개운함을 위해 일부러 토하기도 했습니다. 삶의 질 역시 떨어져갔습니다. 두통이 심한 날은 회사 일을 쉬었고, 가족·친구와의 약속을 취소했습니다.  두통으로 아이의 어린이집 행사에 불참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나는 나쁜 엄마라 자책하며 종합검진을 하였고 CT며 MRI를 찍었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었습니다.

일과 육아로 정신없이 살아서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워킹맘의 삶이란 팍팍하다며 술과 커피로 풀었고 일찍 출근하려고, 또는 일찍 퇴근하려고 끼니를 제때 챙기지 못했습니다. 챙겨도 빨리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나 패스트푸드로 때웠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저를 돌보지 못하며 살던 2022년 여름, 사건은 터졌습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출근을 하려는데 편두통과 함께 심한 구역감이 났습니다. 눈알이 빠질 것 같이 아팠으며 식은땀이 줄줄 흘렀고 서있기조차 힘들었습니다. 평소와는 다른 통증임을 직감하고 회사에 전화를 해 휴가를 내고 기어가듯 걸어가 가까운 약국을 찾았습니다. 약사님은 무작정 약을 찾는 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본인도 두통으로 고생했는데 병원을 다니면서 많이 좋아졌다고 하시면서, 두통을 가만히 두면 병을 더 키울 수 있으니 진료를 받아 볼 것을 권유했습니다. 

 두통을 병원에서 다룬다는 것조차 생소했던 저는 병원을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저와 비슷한 증상으로 검색되는 유명한 병원이 몇 군데 있었고, 그중 집과 가까운 병원으로 예약을 잡기로 했습니다. 예약 부서로 연락을 하여 제 증상을 말씀드렸더니 신경과에서 보는 것이 적합하다고 알려주셨고 진료일에 맞춰 교수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은 제 증상을 차분히 들으시고는 저에게 맞는 약을 처방해 주셨으며, 두통일기 앱을 다운로드 받고 두통이 있을 때마다 기록할 것을 권유하셨습니다. 기록해 두었다가 다음진료 때 가지고 오면 도움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만약 두통이 생기면, 예약을 하지 않아도 되니 병원으로 오라고도 말씀 주셨습니다. 교수님의 그 한마디가, 아무도 모르는 나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알아주는 것 같아 든든했고 왜 진작 병원의 전문의를 찾아가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두통일기 앱을 다운받고, 대한두통학회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두통에 대한 모든 정보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두통을 포털사이트로 알아봤던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가장 중요한 두통의 원인, 도대체 내가 왜 아픈 것인가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원인은 너무나 다양하였기에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기 전에 두통의 유발요인이 되는 행위들을 되도록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해 보였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식습관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6시간 이상 음식을 섭취하지 않는 것은 두통을 유발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하는데, 제가 이것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끼니를 거르기 다반사였기 때문에 지금은 매일 아침 조금이라도 먹고 출근을 하고 있습니다. 두통을 유발하는 아민, MSG, 아질산염, 아스파탐이 들어간 음식은 최대한 자제하려 노력합니다. 직장인이기 때문에 이 부분은 직장 동료들의 이해와 배려가 필요했습니다. 심한 두통을 겪고 있음을 주변에 공개적으로 알리고 술, 커피, 탄산음료, 패스트푸드를 멀리해야함을 이야기 했습니다. 나를 까다롭다고 여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는 정 반대로, 나도 가끔 두통이 있는데 이런 음식들에 두통유발 성분이 있는줄 몰랐다며, 당장 먹는 것을 줄여야 겠다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이렇게 직장동료들의 배려하고 관심을 가져준 덕분에 점심식사는 두통 유발 성분을 최소화한 음식 위주로 섭취하고 있습니다. 식습관을 바꾸기 전에는 커피를 달고 살았던 사람이라, 정말 마시고 싶을때는 소량만 마시거나 디카페인 커피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잠을 너무 많이 자는 것도, 너무 적게 자는 것도 두통을 유발 할 수 있다고 하여 규칙적인 수면패턴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좋은 자세를 유지하는 것도 두통완화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매일 스트레칭을 하고 있습니다. 

 마흔이 된 올해야 비로소 저는 저의 고통을 임시방편으로 땜질하는 것이 아닌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으로 마음을 고쳐 잡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두통에 대한 관점이 180도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어떻게 해서든 이 통증을 무마시키는 것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두통의 원인이 되는 것을 되도록 하지 않고 내 몸을 두통에 맞설 수 있게 건강하게 유지하는 힘을 기르는 것으로 말입니다. 이러한 힘의 원천은 두통을 전문적으로 연구하여 이 질병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전문의를 만난 것입니다. 지금 어딘가에서 두통으로 고생하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가까운 병원을 찾아가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을 도와줄 수 있는 분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